1976년 겨울 신종플루 대유행 우려가 커지자 미국 정부는 자극적인 TV 광고를 내보냈다. 여성 해설자가 나직하면서 위협적인 목소리로 ‘베티의 어머니가 ‘그것’(바이러스)을 택시 운전사에게 옮겼고, 그 사람은 매력적인 스튜어디스에게 옮겼고, (중략) 결국 심장병을 앓던 도티는 사망했다'고 읊조렸다. 건강미를 자랑하던 중년 남자를 바로 다음 장면에서 병상 시신으로 만들어버린 광고도 있다. 백신 접종 권유 광고였지만 정부가 대놓고 ‘감염자 혐오’를 부추긴다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려 50일간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20대 청년이 자신의 경험담을 쓴 책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를 최근 펴냈다. 마스크 쓰고 평소 방역 수칙도 잘 지켰지만 친구와 식사 자리에서 어쩌다 바이러스에 걸린 그에게 ‘좀 조심하지 그랬어’ ‘퇴원 후 회사 복귀하면 나는 휴가 가겠다’ 같은 타박과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보이지 않는 칼로 찔리는 느낌” “바이러스보다 세상과 싸우는 게 더 괴로웠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감염자 혐오’ 목록도 길어지고 있다. 올 2월 대구·경북 사태 때 신천지 교인들은 감염 여부에 상관 없이 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았다. ‘신천지 교인 추방’ 문구를 내건 식당도 있었다. 부부 골프 여행을 다녀온 뒤 확진 판정을 받은 한 지방 공공기관장은 ‘처신 잘못’이라며 징계 절차가 시작되자 결국 사표를 냈다. 코로나 걸린 게 잘못인지 골프가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올 7월에도 휴일에 골프 친 공무원들이 나중에 확진 되자 ‘사회적 물의’를 이유로 무더기 직위 해제됐다. 테니스 치다 코로나 걸렸어도 직위 해제됐을까.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정부가 ‘걸리면 잘못'을 공식화했다. 그제 발표한 특별 방역 지침에서 모든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의 대면 모임, 회식 금지, 이동 최소화 등을 요구했다. 공무원의 솔선수범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도 불가피한 생활이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지침을 위반해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전파되면 문책한다’고까지 한다. 지침을 어겨도 코로나에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은 건가. 코로나에 일부러 걸리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감염자 숫자가 적은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철저한 마스크 쓰기다. 반면 정부는 바이러스 발원지이자 창궐지인 중국에 대문을 열어주었다. 섣불리 방역 성공을 자랑하다 1차, 2차 대유행을 맞았다. 정부 비판 단체의 집회는 ‘살인 위협’이라 하고, 민노총 집회는 비판 시늉만 한다. 공무원들 징계를 말하기 전에 고위 책임자들부터 지난 10개월을 되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