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박두만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고 싶어 모든 걸 건 형사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나면 한 가지만큼은 누구나 진하게 공감했다. 그놈이 잡고 싶다!
범인을 미치게 잡고 싶어 하던 형사 박두만의 실제 모델이 있다. 바로 연쇄살인 사건 당시 고 하승균 총경과 함께 그놈이 잡고 싶어 밤잠을 줄여가며 현장을 뛰어다닌 형사 김복준이다. 그놈이 알고 싶고, 그놈을 잡고 싶은 형사 김복준의 모습은 박두만뿐 아니라 서태윤 형사(김상경 분), 구희봉 반장(변희봉 분)에게서도 보인다. 봉준호 감독은 형사 김복준의 복심을 영화 속 형사 캐릭터들, ‘살인의 추억’ 자체에 심어 놓았다.
영화 ‘옥자’(2017)에서도 희봉이라는 배역으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배우 변희봉은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도 동행했다. 당시 변희봉은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랜다스의 개’(2000)부터 1000만 영화 ‘괴물’(2006) 등의 촬영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특히 ‘살인의 추억’(2003)에 대해서는 아주 치밀하고 진지했던 봉준호의 모습에 관해 얘기했다.
“첫 영화(플랜다스의 개) 때부터 보통은 아닌 감독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인의 추억’ 때는 뭔가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 진지한 태도에 우리도 함께 그랬던 것 같습니다. 농수로에서 아이가 발견되고 나서 주변 수색을 하는 장면인데,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좀 경사가 있었어요. 봉 감독의 디렉팅은 ‘좀 뛰어 보세요’였어요. 이렇게도 뛰고 저렇게도 뛰고 몇 번을 뛰었는지 몰라요. 나중엔 기운도 빠지고 땅바닥은 축축하고 풀도 있고 여간 미끄럽지가 않고, 그래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며 뛰다 뒤뚱거리고 자빠지고 그런 거예요. 영화를 보니 알겠더라고요. 처음부터 허둥대다 자빠지라고 했어도, 내 업이 배우인데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거랑 달랐겠죠. 그냥 자연스럽다, 이거를 떠나서 구 반장이 지금 느끼고 있는 초조한 마음 상태, 국민께서 보기에 한심해 보이는 경찰, 이런 게 그대로 다 보이더라고요. 잡기는 해야겠지, 근데 이거 안 잡히지, 미치고 환장하겠는 거죠, 그런 모든 것들 잘 녹아든 장면인 거죠. 근데 감독이 진지하니까 나도 암 소리 않고 계속 또 하고 또 했어요. 다른 배우들도 그랬고요. 좋은 영화는 지나서 생각해 보면 그 현장에 차이가 있습디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 역시 “그때 어느 지역을 떠나서 모든 국민이 무섭고, 특히 비 오는 날이면 더욱 두렵고, 얼른 잡았으면 좋겠고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소시효가 마지막 사건 발생 연도 1991년을 기준으로 2006년(살인 공소시효 15년)으로 끝나는 상황이었어요. 그전에 잡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영화가 수사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 열망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실제 희생이 있었던 사건이고 유가족이 계시고, 저 현장에서 유머러스 한 사람인데, 실화사건이다 보니 (변희봉)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보탰다.
정말 온 국민의 열망이 합해진 덕분이었을까. 지난해 별도의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자신이 진범임을 자백했다. 지난 2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의 재심 9차 공판에서도 이춘재는 자신이 14건 연쇄살인의 진범이라고 법정 증언했다. 이로써 연쇄살인을 미제 사건으로 남겨 스스로 ‘실패한 형사’라고 부르던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이력에 수정이 필요할 듯하다. 아니, ‘실패’를 그대로 두어도 좋다. 1982년 경찰에 입문해 2014년 동두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경찰 인생을 마무리한 형사 김복준은 실패를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연쇄살인과 같은 서구형 ‘연쇄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실전 경험 없는 이론가가 아닌 현장 실무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연구가 절실하다는 판단 아래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할 만큼 학업에 매진했다. 이후 국립중앙경찰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가 하면, 대중과 소통하며 범죄예방에 힘쓰고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찰의 전문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례로 각종 TV프로그램 및 유튜브 채널 ‘사건의뢰’를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고, ‘대한민국 살인사건’ 1·2권, ‘형사 김복준’ 등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
최근 발간된 ‘연쇄범죄란 무엇인가’ 역시 현장 전문가의 수사연구 필요성, 나아가 연쇄살인이나 연쇄방화 등 연쇄범죄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한다. ‘연구’라고 하니 어려울 것 같지만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대중과 오랜 시간 소통해 온 ‘형사 김복준’이다 보니 술술 읽힌다. 연쇄범죄와 연속범죄는 무엇이 다른지, 또 다중범죄와는 어떻게 다른지 책을 통해 확인해 보자. 심리적 준비, 낚시질, 구애, 포획, 실행, 회상, 침체…연쇄범죄에도 심리단계가 있다는 설명은 흥미롭다.
한 가지만 미리 공개하자면, 연쇄범죄라는 명칭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가장 먼저 사용했고, 연쇄살인범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적용된 첫 사례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30명 이상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죄자 테드 번디였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