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이 재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소규모 집단감염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족 간 감염은 물론 사우나와 지인모임, 식당 등 일상공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소규모 집단감염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 감염을 대확산의 근본 원인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오히려 급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당황한 정치 지도자들이 소규모 모임을 편리한 희생양을 삼고 개인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유행은 개인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라기보다 방역시스템의 실패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는 23일(현지시간) 미국 보건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소규모의 저녁식사를 통해 퍼질 수 있지만 이런 소규모 모임이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가족 간 모임 등 소규모 모임은 의심의 여지 없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이런 소규모 모임이 현재의 감염 급증을 주도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는 “감염학자들에 따르면 소규모의 모임이 급증하는 확진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소규모 모임이 지역 사회 전파에 얼마나 기여하는 지 추정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어떤 소규모 모임이 전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비교하거나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탐 이글레스비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보안센터소장은 “모임들에 대해 공중보건에 관한 정확한 조언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며 “하지만 확산의 원인 자체를 소규모 모임으로 몰아버려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감염병 학자들은 소규모 모임에 대한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조치들이 내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애슐레이 튜이트 캐나다 토론토대 감염학과 교수는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기괴한 권고들이 내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8일 팀 왈츠 미네소타 주지사는 사람들이 실내나 실외에서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버몬트주에서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써도 이웃들 간에 만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10시 이전에는 식당 실내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허용했다. 사실상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조치들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회 모임이 급증하는 환자 수에 당황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편리한 희생양이 됐다고 말한다. 엘리 머레이 미국 보스턴대 감염학과 교수는 “정치 지도자들은 감염을 통제할 책임을 개인과 개인의 선택에 넘기는 것처럼 보인다”며 “대유행은 개별 선택의 실패보다 시스템의 실패에 가깝다”고 말했다.
경제활동 제한이나 제대로 된 시스템적 방역조치를 내리지 않고, 개인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경우 마스크를 쓰는 등의 방역조치를 제대로 내리지 않은 곳에서 최악의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에게 잘못을 돌리는 조치들은 이미 대유행과 정치의 피로에 휩싸인 대중에게 불신과 분노를 불러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리아 마커스 미국 하버드대 감염학과 교수는 “’모이지 마시오’가 아닌 ‘여기에 모여라’라와 같은 현실적인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에 기온이 떨어지면 지방 정부는 야외 텐트와 화덕, 난로를 마련해 실외에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모임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