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통일 신라 시대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은 불상 중에서 단연 으뜸에 속한다. 금동으로 제작돼 곳곳이 부식됐지만, 전형적인 팔각형 연화대좌(蓮華大座) 위에 입상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앞쪽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부처의 자비로움이 느껴진다.
8세기 말~9세기 초반 제작된 높이 24㎝의 금동불상을 비롯해 고려청자, 조선 시대 백자와 분청사기, 왕실에 걸린 궁중화, 서민들이 즐겼던 민화, 일상 공예품, 전통 산수화 등을 아우르는 고미술품 100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에 있는 국내 최대 고미술 전문 화랑 다보성갤러리가 오는 20일 개막하는 ‘한국의 미 특별전’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선조들의 삶 속에 담긴 지혜와 문화를 되새기고 침체된 고미술 시장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기획했다.
국보급 청자와 궁중도자기 수두룩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고려청자가 관람객을 반긴다. 13세기 전북 부안 가마터에서 발굴된 ‘청자상감죽절표형주자(靑瓷象嵌竹節瓢形注子)’는 고려 사람들이 스스로 비색(翡色)이라 일컬으며 자랑했던 투명한 녹청색을 실감하기에 제격이다. 본체 표면에 대나무를 세로로 촘촘히 세운 모양을 만들고 마디마다 홈을 파서 백토를 넣고 구워낸 백상감 기법이 빼어나다.
발길을 살짝 옆으로 옮기면 조선 시대 국보급 도자기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15세기 때 제작된 ‘백자철화용문호(白磁鐵畵龍紋壺)’는 풍만하게 벌어진 둥근 몸체가 어깨까지 팽창된 형태여서 당당하고도 대담한 느낌을 준다. 몸체 위쪽에는 검은색 안료인 철사(鐵砂)를 사용해 용 문양과 모란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17세기 경기 광주 가마터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백자철화운용문호(白磁鐵畵雲龍紋壺)’는 몸통 전체가 둥근 형태의 조선백자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높이 37㎝의 궁중도자기 ‘백자청화운용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 역시 백색으로 상징되는 조선백자의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적당한 균형과 긴장된 선의 흐름을 잘 간직하고 있고, 흰 바탕에 꿈틀거리는 용의 자태를 그린 묘사력이 압권이다.
북한 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된 15세기 백자 불함(佛龕)과 비슷한 도자기도 나와 있다. 세 점의 작은 금동불상을 안치한 것으로 알려진 ‘백자음각연화조문투각불감(白瓷陰刻蓮花鳥紋透刻佛龕)’은 회백색 바탕에 흑갈색 철화로 문양을 넣은 희귀작이다. 둥근 뚜껑에는 새와 연꽃을 새겼고, 몸체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곽분양향락도와 추사 묵죽도 눈길
조선 시대 고서화 명작들도 고루 자리했다.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당나라 사람 곽자의의 성공적인 삶을 그린 10폭 병풍 ‘곽분양향락도(郭粉陽享樂圖)’는 섬세하고 우아한 필치와 화려한 구성이 다부지다. 영조 때 화원들이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연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금가루와 수묵, 채색으로 차지게 아울렀다. 조선 중기 화가 허주 이징의 ‘금니산수도(金泥山水圖)’는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물을 사용해 하늘로 치솟은 먼 산의 봉우리와 능선을 세필로 그린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묵죽도’도 걸렸다. 대나무의 아름다움을 마치 글씨를 쓰듯 그려 추사의 학문과 예술이 일치하는 이상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숭어의 휘젓는 지느러미에 하얀 물방울이 튀어오를 듯 그린 이한철의 6폭 병풍 ‘어해도’, 정형적인 화면 구도에 여백미가 돋보이는 흥선대원군의 ‘석란도’, 평양 시가지와 자연환경을 담은 ‘평양성 일지 병풍’ 등에서도 대가들의 독특한 화풍을 감상할 수 있다.
2층 전시장에는 주로 조선 후기의 희귀한 민속품과 유물을 배치했다. 고풍스러움이 가득한 반닫이와 약장, 책장, 혼례상과 수납용으로 쓰이는 아기농 등 ‘살아있는 생활교과서’를 만날 수 있다.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은 “기품 있는 불교 미술을 비롯해 궁중장식화, 서정적인 산수화, 해학 넘치는 풍속화, 글씨 등을 통해 조상들의 작업이 얼마나 폭이 넓고, 역량이 탁월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0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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