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 8월 2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정부가 표방하는 목적은 상법과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금융그룹감독법을 제정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 집단의 부당한 남용을 근절하며 금융그룹의 재무건전성을 통해 공정경제의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최대주주(A)는 특수 관계인(B)의 지분을 합쳐 3%만 의결권을 행사토록 하며,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것 등이다. A와 B에 각각 3%씩 허용해도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며,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향 조정하는 것 등이다. 금융그룹감독법은 금융지주회사가 아닌데 둘 이상의 금융업을 하는 기업집단 중 소속 금융계열사의 자산 총액이 5조 원 이상인 집단은 금융 당국의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입법돼선 안 되는 이유들이 있다.
첫째,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에 바탕을 둔 정의의 규칙(도덕과 법)은 재산 소유의 안정성을 위한 것이다. 즉, 정의의 규칙은 희소하고 약탈 가능한 재산의 소유를 둘러싼 분쟁을 해소하는 방책으로 생긴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침해해 소유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런데 3% 의결권 규제는 최대주주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이다.
둘째, 복잡하게 돌아가는 경제를 규제하지 말고 시장에 맡기라는 이유는, 규제가 아무리 선(善)한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대부분 의도하지 않은 악(惡)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3법은 애초부터 사유재산을 침해해 기업집단을 해체하려는 악을 의도하고 있으므로 부도덕하고 불공정하다.
셋째, 법치가 의미하는 법(law)이 아니다. 법치의 법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포함해선 안 되며, 어느 시공간에서나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즉, 특수한 목적을 가져선 안 된다. 그런데 3법은 대기업과 사실상의 주인인 최대주주를 규제하는 구체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넷째, 기업집단은 불완전한 시장을 보완,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태동한 효율적 생산구조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 있으며, 이들 집단이 없는 나라는 모두 가난하다. 돈 잘 버는 집단이 없는 탓이다. 기업집단을 적폐로 몰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한국경제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을 부정하는 일이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폐 청산’과 “사람이 먼저다”는 양립할 수 없다.
고도로 분업화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DNA도 수렵채취 시대에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물론 그것은 분명히 미덕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런 ‘빈곤의 미덕’에서 벗어나 현대의 물질문명에 걸맞은 지식과 경제관을 가져야 퇴보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축적된 자본으로 짧은 시간에 다량의 소비재를 생산해 풍요로운 물적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기업집단을 해체하려는 망령된 의도는 한국을 석기시대쯤으로 되돌리려는 어리석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