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금융권 가계대출이 크게 늘고 있지만 연체율은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낮게 유지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저금리로 인해 '대출 총액'이 늘어난 데다 만기대출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등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조치가 효력을 발휘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를 달리 해석하면 정부가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연체율 상승을 틀어막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부 정책의 시효가 끝나는 내년 상반기 이후 이른바 '부채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이유다.
급증하는 가계대출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9월만 봐도 작년엔 4조8,000억원이었던 시중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이 올해(9조7,000억원) 두배 이상 뛰었다.
이런 흐름은 올해 내내 이어지고 있다. 3~8월 사이 가계대출 증가 추세를 보면, 4ㆍ5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년보다 올해 증가액이 많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3월에는 올해 증가액(9조6,000억원)이 작년(2조9,000억원)보다 3배 이상 높았다. 6월에는 작년보다 2조8,000억원, 7월 1조8,000억원, 8월 4조4,000억원 등으로 가계대출 증가액이 많았다.
저축은행도 비슷하다. 지난해 12월 26조1,000억원이던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올해 9월 29조6,000억원으로 3조5,000억원이나 급증했다. 카드사 장기대출(카드론)은 대부분 가계에서 이용하는데, 지난 9월 국내 7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론 이용액(4조1,500억원)은 작년 9월보다 34.3%(1조620억원)나 증가했다.
뚝 떨어진 연체율… 0%대 카드사도 나와
반대로 연체율은 갈수록 내려가고 있다. 시중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은 9월(0.22%) 들어 8월보다 0.05%포인트 더 떨어졌다. 이는 작년 9월보다도 0.07%포인트 낮은 수치다. 올해 8월 연체율(0.27%)도 작년 8월보다 0.05%포인트 낮았다.
이런 흐름은 월별 가계대출 증가액이 지난해를 앞서기 시작한 3월부터 계속되고 있다. 올해 3~7월 사이 연체율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모두 0.01~0.03%포인트씩 낮다.
통상 시중은행보다 연체율이 높은 저축은행의 9월 가계대출 연체율(3.5%)도 작년말 대비 0.1%포인트 낮아졌다. 심지어 카드사 중에는 9월 연체율이 0%대에 들어선 곳도 있다. KB국민카드와 우리카드는 0.99%, 하나카드와 삼성카드는 각각 1.08%와 1.0%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신한카드조차 1.24%에 머물렀다. 카드사의 평균 연체율 1.06%로, 지난 6월(1.38%)보다 0.32%포인트나 줄었다.
“연체 위험 있어...금융사 손실흡수 능력 키워야”
이 같은 현상은 그만큼 대출이 가파르게 늘어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연체금을 대출 총액으로 나눈 값인 연체율은 통상 대출 잔액이 늘어날 때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정책 효과도 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대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만기대출 연장, 이자상환유예 등 정책으로 가계에 자금 여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낮은 연체율이 '착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경제가 되살아나 가계대출 규모가 줄면, 그만큼 연체율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의 자금지원과 대출 관련 유예조치까지 끝나면 연체율이 급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예정대로라면 대출만기 연장, 이자상환 유예 조치는 내년 3월 종료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금리가 높은 2금융권 중심으로 분명히 연체 위험이 잠재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연체율의 패턴과 내년 경기상황에 주목한다. 통상 대출 증가 시기 초반에는 기술적으로 연체율이 낮아졌다가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서서히 올라가는데, 내년 상반기 불경기가 지속될 경우 자칫 연체율이 더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은 부실대출이 있어도 확인하기 어려운 잠재 상태"라며 "다만 백신이 나오고 내년 경기가 회복되면 우려하는 만큼의 연체율 급등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