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디지털 인력, 채용보다 내부 양성ㆍ말로는 고용 창출, 실제 수요 없어ㆍ8월 성적 공개 앞두고 전전긍긍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은행권 일자리 창출효과 측정’ 계획이 나온 이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은행 업무가 점점 디지털로 전환되는 추세 속에 관련 인력은 외부 채용보다 주로 기존 직원들을 교육하거나 순환근무를 하는 방식으로 내부에서 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방침을 두고 은행권 일각에선 ‘신규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업무 방식도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로 간소화하는 등 딱히 고용 수요가 없다는 점도 은행들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디지털 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해 오는 2025년까지 전체 직원(1만7500여명·기간제 직원 포함)의 23%인 4000명가량을 정보기술(IT) 직군 등 디지털 인력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경력직과 신규직원 채용도 진행하지만 상당수는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연수 과정 등을 거쳐 양성할 방침이다.
다른 은행들도 대부분 외부 인력 채용보다는 순환근무 등을 통한 내부직원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디지털 분야 인력은 일반 직군과 달리 채용하더라도 주로 경력직을 수시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채용 규모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ICT 분야 채용을 연중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 신한은행은 지난달 필요 직무별 우수 인재를 적기에 채용할 수 있는 ‘디지털·ICT 신한인 채용위크’를 신설했다. 하나은행은 내년까지 디지털 인력 1200명을 확보할 계획이지만, 외부 채용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별도의 인력을 채용하기보다는 디지털 소양을 갖춘 준비된 은행원을 뽑고 내부교육을 통해 전문가로 양성하는 쪽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2017년 하반기부터 디지털·IT 분야를 별도 신설해 채용하고 있으나 내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농협은행과 기업은행은 올해 상반기 디지털 분야에서 각각 20명, 25명을 채용했으나 하반기 채용 계획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금융권의 직간접 일자리 창출 효과를 측정해 오는 8월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금융권 안팎에서는 ‘과도한 경영 간섭’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에 최종구 위원장은 “말 그대로 금융권의 일자리 창출 성과를 측정해보는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은행 관계자는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은행 점포를 없애거나 희망퇴직 등을 통해 인력을 줄여나가는 마당에 당국의 일자리 측정 계획 자체가 은행권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스스로도 말로만 고용 창출에 앞장서겠다고만 할 게 아니라 주력하고 있는 디지털 분야에 적정한 인력을 새로 충원하는 방안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 교수는 “은행권 인력 수요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혁신금융과 신사업 등에 필요한 인력, 디지털시대에서 소외될 수 있는 고령자 등을 위한 인력은 향후 은행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