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지난해 국세, 예상보다 25조원 넘게 더 걷혀 ‘초과세수’ 사상 최대
지난해 경기 부진에도 예상보다 국세가 25조4000억원이나 더 걷히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세입 규모를 과도하게 적게 예상해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활성화를 가로막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세수를 적게 예상하면 이에 맞춘 예산안 규모도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2018 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를 보면 지난해 총세입은 385조원, 총세출은 364조5000억원이다. 총세입에서 총세출과 국채 상환액(4조원)을 뺀 결산상 잉여금은 1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사용 용도가 정해졌지만 예산 집행이 되지 않아 올해로 이월된 3조3000억원을 뺀 순수 세계잉여금은 13조2000억원이다.
세계잉여금이 13조원이나 남은 것은 국세 수입(293조5000억원)이 당초 정부 예상(268조1000억원)보다 25조4000억원 더 걷혔기 때문이다. 세목별로 보면 반도체 등의 수출 호조로 법인세가 예상보다 7조9000억원 더 걷혔다. 부동산 거래 증가 등으로 양도소득세는 7조7000억원, 명목임금 상승과 상용근로자 수 증가로 근로소득세는 2조3000억원 증가했다. 민간소비와 수입액이 늘며 부가가치세는 2조7000억원, 주식 거래대금이 늘며 증권거래세는 2조2000억원이 각각 더 걷혔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세수부족 사태를 겪었지만 이후 최근 3년 동안은 초과세수가 지속되고 있다. 2016년에는 약 19조7000억원, 2017년에는 약 23조1000억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을 늘려 대처했어야 함에도 세수 추계를 보수적으로 해 긴축재정을 편 꼴이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초과세수의 원인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이어서 기재부가 일부러 세수 추계를 보수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조영철 고려대 초빙교수는 “반도체 수출 호조와 부동산 가격·거래 증가 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상용직 증가도 몇 년 전부터 지속된 현상”이라고 했다. 이어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소비 증가와 이에 따른 부가가치세 증가도 예상 가능했다”며 “세계잉여금으로 국가채무 갚는 것을 선호하는 기재부 분위기가 반영돼 대규모 초과세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세금이 더 걷히면서 민간 재정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초래됐다”며 “기재부가 세입을 의도적으로 낮게 예측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세수 추계 모형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세수 추계 모형을 공개하는 대신 세수 추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개선 방안에는 거시지표를 기반으로 한 현행 세수 추계 모형을 벗어나 개인별 소득과 과표·공제액 등 세부사항을 추정해 계산한 후 합산하는 방식이 담길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재부와 국세청, 관세청, 조세재정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세수 추계 태스크포스(TF)에서 기관별 전망치를 제시·논의한 후 최종 세입예산안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겠다”며 “조세연구원과 협업해 현행 세목별 세수 추계 모형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