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복잡함
■ 복잡함의 디자인, 유기적 생명력의 경이로움
요리스 라르만(Joris Laarman)의 뼈의자(Bone Chair). 호리호리하고 유기적인 곡선이 낯설다. 규칙은 잡힐 듯 말 듯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워 호기심이 생긴다. 일반적 감수성에서, 나의 공간에 들이기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하다. 하지만 나는 이 의자가 디자인의 중요한 이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지를 드러내면서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이 의자의 디자인에는 인체의 뼈가 성장하는 과정이 수학적으로 적용됐다. 이런 생명의 원리는 생물학 연구실에서 아주 복잡한 방정식을 통해 규명된 바 있다. 이 연구를 토대로 나무와 뼈가 성장하는 방식의 차이를 비교해보자. 나무는 튼튼하게 성장하기 위해 물질을 보탠다. 그러나 인간의 뼈는 무작정 무게를 보태기만 하면 생명활동의 효율이 떨어진다. 효율을 위해 때로 물질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뼈는 가운데 부분이 오목하다. 이런 진화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우리 뼈는 ‘튼튼함’과 ‘효율’이라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이상적인 해결책을 찾아왔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 튼튼해지려는 것이다. 이 원리를 디자인에 적용하면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물건을 산뜻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디자인은 기계의 복제를 통해 대량생산을 하는 조형예술 분야다. 따라서 산업혁명시대 이후 세계사에 전면 등장한 디자인의 역사는 곧 기계 발달사에 응답해온 아름다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바우하우스 100주년이기도 하다. 바우하우스는 100년 전 산업용 기계의 한계 속에서 최선의 비용과 방책을 찾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디자인을 누리게 하는 데에 기여한 운동이다. 바우하우스는 외적 양식의 수학적인 측면에서는 기본 형식만을 갖추고 있었다. 직선과 원·평면도형과 몇 개의 숫자로 기술되는 질서정연하고도 규칙적인 유클리드기하학을 토대로 한다.
아직도 일반의 수학적 직관 속에서는 이런 유클리드적인 단순한 도형의 세계만이 기하학의 전부라고 잘못 여겨지는 것 같다. 수학적인 모델과 패턴은 이제 항상 단순한 규칙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수학자 앨런 튜링, 동물의 무늬 속 복잡한 규칙성을 수학적으로 다뤄 과학과 공학의 정합적 아름다움을 디지털 시대 디자이너들은 포착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인 앨런 튜링은 수학자로서 컴퓨터공학과 암호학의 선구자였다. 그는 생물학의 주제라고만 여겨진 ‘동물의 무늬’를 처음 수학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제 무정형적인 동물의 무늬처럼 직관적인 규칙이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도 수학이 해결책을 제시하며 보다 복잡한 규칙성을 찾아갔다. 자연의 복잡성은 무작위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유기적인 현상과 생명현상의 원리는 수많은 변수를 가진 방정식으로 기술된다. 항이 많아지고, 알고리듬은 길어진다. 디지털시대인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이 복잡한 연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런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제 디자이너의 창의력이란 기존에 미처 지각하지 못한 변수들을 정의하고 찾아내는 데에서 새롭게 발휘된다. 디자이너들은 규칙을 디자인하고 이를 파생시킴(generate)으로써 전적으로 새로워진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고 새로운 미학에 다가간다.
요리스 라르만의 ‘뼈의자’는 컴퓨터의 연산 수행에 힘입어 자연의 복잡함을 그대로 드러내 기능적·미적 측면 모두 완결적
과학의 전통적인 경계는 점차 재편돼 가고 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나는 종종 과학과 공학 분야의 논문들을 살핀다. 주변에서 “전공을 바꾸려고 하느냐”고 농담을 걸면, “디자인을 잘하려고 그런다”고 대꾸한다.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스스로는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도출해낸 정합적인 아름다움을 디자이너의 눈으로 포착하며 감탄하곤 한다. 산업시대의 디자이너가 제임스 와트의 후예였다면, 오늘날 디지털시대의 디자이너는 앨런 튜링의 후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요리스 라르만은 그야말로 ‘튜링적인’ 디자이너의 대표 격이다. ‘뼈 의자’로 예를 들어보자. 산업시대의 디자이너라면 뼈의 외형에서 영감을 받은 의자의 설계도를 하나 만들어 표준화된 기계를 통해 똑같이 복제한 획일적인 결과물들을 찍어낼 것이다. 한편 디지털시대의 디자이너는 뼈가 성장하는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이것을 수학적으로 기술해 알고리듬을 짠다. 그리고 매개변수들의 초기값을 조금씩 조정해서 하나의 원리로부터 다양한 변주들을 도출해낸다.
이 유기적이고 복잡한 형태는 산업시대 이전 바로크나 유겐트슈틸의 복잡한 장식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치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운 복잡함을 원리 그대로 드러낸다. 어느 것 하나 덜어낼 군더더기 없이 기능적·개념적·미적인 측면 모두에서 완결된 복잡함이다.
미래의 조형은 과학과 기술의 변화 양상, 그리고 디지털시대 컴퓨터의 복잡한 연산 수행에 힘입어 완결된 복잡함을 끌어안을 여유가 생길 것이다. 직선과 육면체를 벗어나 유연하고 유기적인 형태로 소용돌이칠 것이다. 그렇게 생명으로 넘쳐흐를 것이다. 우리가 바우하우스로부터 취해야 할 것은 단순명료하고 기하학적인 외관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교훈은 그 시대의 기술에 적극 대처해 이전에는 가보지 않은 아름다움에 도달한 자세다. 이제 21세기의 기술을 통해 디자인에는 복잡함이 돌아오고 그 명예와 가치가 다시 회복될 것이다.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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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은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이자 저술가, 그래픽 디자이너다. 서울대와 독일 라이프치히 그래픽서적예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고, 저서 <글자 풍경>을 펴냈다.
■ 과학에 묻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단순해 보이는 호안 미로의 그림 복잡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 하트 등의 단순한 기호가 모여 새로운 차원의 복잡함을 생성
1920년대 호안 미로는 당시 유행하던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렸다.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살육을 경험한 유럽은 정신적으로 혼란과 충격에 빠져 있었다. 문명세계가 저지른 야만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생각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우연과 비논리가 지배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그렸다. 비논리를 넘어 반이성, 반문명으로 나아간 다다이즘은 예술을 파괴하려고까지 했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예술품이라고 주장한다.
1920년대 말 미로는 다다이즘의 영향으로 회화를 포기하고 콜라주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콜라주란 여러 가지 재료를 캔버스에 붙여 작품을 만드는 기법이다. 1928년작 ‘무용수의 초상’은 핀, 코르크, 깃털을 캔버스에 붙인 것이다. 이 작품에 매료된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는 “이보다 더 발가벗은 상태를 상상할 수 없다”며 여기서 에로틱한 연상을 했다고 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제목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무용수를 나타내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단순하게 무용수를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미로의 단순함은 몬드리안의 단순함과 다르다. 몬드리안은 작품에서 의미를 최대한 제거하려 했다. 원색의 단순한 직사각형들은 기하학적 아름다움만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 제목이 그냥 ‘구성 6번’, 이런 식인 이유다. 단순함이 목적이라 볼 수도 있다. 미로의 단순함은 의미를 위한 수단이다. 미로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작품의 내용에 중점을 둔다. 풍부한 의미를 갖는 강렬한 소재는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단순함의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행위나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기호다. 하트라는 기호는 인간이 가진 가장 복잡한 감정인 사랑을 찌그러진 원으로 표현한다. 콜라주에 등장하는 소재는 그 하나하나가 상징이자 기호다. 이제 미로는 콜라주를 물감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콜라주에서 회화로 돌아온 것이다. 기호는 미로의 그림에서 핵심이 된다. 기호는 그 자체로 단순의 욕구에서 나온 것이지만, 기호가 모이면 새로운 차원의 복잡함이 생겨난다. ‘문자’라는 기호가 모이면 ‘소설’이라는 복잡함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미로의 1945년 작품 ‘고딕 대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를 듣는 무용수’는 ‘무용수의 초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로의 후기 작품으로 가면 거친 붓자국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많다. 두꺼운 물감 덩어리가 마치 콜라주의 소재같이 캔버스 위에 얹혀 있거나, 벽에 끼얹은 것처럼 물감이 줄줄 흘러내리며 만들어진 작품도 있다. 캔버스의 일부를 찢거나 태우는 것도 예사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액션 페인팅이라는 기법으로 넘어간다. 잭슨 폴록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뿌리는 것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작품을 보면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다. 제목도 ‘No. 31’ 같은 식이다. 폴록의 그림은 정말 복잡함과 무질서 그 자체다.
2018년 PNAS라는 과학저널에 ‘엔트로피와 복잡성의 눈으로 본 회화의 역사’라는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다. 이 논문은 지난 천년간 그려진 회화 14만점을 무질서도와 복잡성의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역사적으로 뚜렷한 변화의 양상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를 평가하는 수치인데, 폴록의 그림처럼 규칙성이 거의 없는 작품에서 큰 값을 갖는다. 복잡성은 그 자체로 복잡한 용어다. 복잡성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조차 아직 복잡성의 정확한 정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문의 저자들은 그림을 픽셀이라는 작은 사각형으로 촘촘히 나누고 이웃한 픽셀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엔트로피와 복잡성을 계산했다. 놀랍게도 이렇게 단순한 방법만으로도 14만점의 그림을 화풍에 따라 성공적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잭슨 폴록의 그림은 무질서하지만 그 속에 질서가 보이는 듯한 느낌 과학이 아름다움을 답하진 못해도 복잡성에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물리적으로 질서와 무질서는 확률로 구분할 수 있다. 백만개의 동전이 모두 앞면을 위로 하여 놓여 있으면 질서가 있는 것이고, 앞뒷면이 각각 절반씩 있으면 완전히 무질서한 것이다. 질서 있는 배열이 저절로 일어날 확률은 거의 0이다. 자연에서 동전을 던지면 완전히 무질서하게 된다. 이를 카오스라고도 한다. 카오스라고 할 때는 그 결과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잘 정의된 절차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주에 법칙이 있어도 완전한 무질서를 얻을 수 있다. 아니 우주는 무질서를 선호한다. 이것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 한다. 사실 질서와 완전한 무질서는 완벽하게 정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복잡함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아름다움과 복잡함의 관계는 무엇일까? 미로의 ‘무용수의 초상’은 단순화된 대상이 불러일으키는 복잡한 상상이 미적 쾌감을 주는 것일까? 잭슨 폴록의 그림은 완전히 무질서하지만 그 속에 뭔가 질서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아름다움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우주의 아름다움은 사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에 가깝다. 아름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과학이 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는 적어도 복잡성에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잡하다.
김상욱
김상욱은 물리학자로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다. KAIST를 졸업하고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김상욱의 양자공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을 펴냈다.』 김상욱·유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