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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삼국유사 - 일연 [이주향의 내 인생의 책] 덧글 0 | 조회 59 | 2021-02-04 23:28:56
김인수  

[경향신문] ㆍ삼국유사, 이 땅의 기억

어느덧 봄날이 갔네요. 한 번도 봄꽃에 홀려보지 않은 사람처럼, 봄바람에 취한 적이 없는 것처럼 무표정하게 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어쩌면 그 무표정은 봄꿈을 깬 자리의 적막이고, 그 적막을 감당하며 살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영랑의 모란이 그리워진 어느 날, <삼국유사>의 조신의 꿈이 확, 들어왔습니다. 온몸, 온 마음, 온 생애를 바쳐 사랑했으나 남은 것은 빈손! 일연 스님이 노래합니다. “즐겁던 한 시절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시름에 묻힌 몸은 덧없이 늙었어라…. 인간사 꿈인 줄 나 이제 알았노라.”

어느 날, <삼국유사>가 내게로 왔습니다. 만 가지 파도를 쉬게 하는 피리 이야기, 쑥과 마늘의 시간 백일을 견딘 곰 이야기,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미추왕 이야기, 문무왕 이야기, 현세의 부모뿐 아니라 전생의 부모에게도 마음을 다하는 김대성 이야기,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 이야기….

겨자씨처럼 아주 작게 흔적도 없이 박혀 있었던 그 이야기들이 어느 날 내 삶의 정원 어디에서 싹을 내고, 잎을 내고, 꽃을 냈습니다.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거기에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할아버지가 있고, 할머니가 있고, 그리고 우리들이 있네요. 나는 생각합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은 이 땅의 기억이고,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기억이 피어올린 꽃이라고.

<삼국유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만파식적 이야기입니다. 만파식적은 아버지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신문왕의 피리지요? 7일의 비바람과 어둠을 견디고 마침내 완성된 악기는 만 가지 시름을 쉬게 하는 피리입니다. 원래 피리는 혼과 숨의 악기, 디오니소스의 악기입니다. 혼을 불어넣는 숨을 통해 고통을 환희로 바꿔내는 그 피리, 우리도 얻어야 하고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주향 |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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