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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충전소 찾은 고객, 다시 올지 안올지 이미 안다" [신현보의 데이터人] 덧글 0 | 조회 140 | 2020-12-05 09:07:42
달리면  

'디지털 전환'(DT, Digital Transformation)은 글로벌 산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경영 환경이 급변하면서 DT의 중요성은 최근 들어 훨씬 더 커졌다.

DT의 중심에는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AI)이 있다. 데이터를 자산화(asset)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은 너도나도 데이터를 활용해 업무의 효율화, 자동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 등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DT 도입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가 지난 5월 국내 기업 1345개사(대·중견기업 49개사, 중소기업 1296개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DT 전담조직을 보유한 기업은 전체 2.1%에 불과했다. DT 인력을 보유했다고 응답한 기업도 6.2%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DT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에너지·화학 업계에서 AI를 활용한 DT에 혁신 사례를 낳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SK디스커버리다. 지난 8월 SK디스커버리는 SK가스에 있던 데이터 사이언스팀과 외부 DT전문가를 영입해 'SK디스커버리랩', 일명 '디랩(D-Lab)'을 신설했다. 디랩은 SK가스 뿐 아니라 SK케미칼, SK바이오사이언스, SK D&D 등 SK디스커버리 산하에 있는 모든 회사들의 DT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SK가스와 디스커버리 산하 DT 최일선에 있는 여성주 SK가스 데이터사이언스팀 팀장은 "디지털 전환이 잘 이뤄지지 않는 곳들의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나, 통계 전문가의 부족이 아니라 실무진들의 필요를 파악하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 부족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다음달 누가 충전소 안 올지 안다

IBM에서 인공지능 프로젝트 등을 수행했던 여 팀장은 3년 전에 SK가스에 입사했다. 그는 처음 입사해 가장 먼저 '데이터 웨어하우스'(Data Warehouse)를 만들었다. 모을 수 있는 전사 데이터를 모두 긁어다가 한 통에 저장한 것이다. 이를 통해 클릭 한번으로 말단 사원부터 경영층까지 동일한 데이터를 보게 됐다. 그전까지 데이터를 입력하며 '데이터 생산자'에 머물렀던 직원들이 이제는 '데이터 분석가'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제 그의 팀은 그간 잘 축적해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머신러닝과 딥러닝 등 AI를 적용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최근 SK가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충전소 이탈 고객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여 팀장은 "SK가스 '행복충전' 멤버십 제도에서 발생하는 고객 충전 이력과 지역 상권 등 외부 데이터를 활용해 한달 뒤 멤버십 회원이 우리 충전소를 방문하지 않을 확률을 정확하게 예측해 업무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또한 SK가스는 이번 달에 '위고(Wego)' 라는 가스플랫폼을 오픈해 AI기반으로 거래처 재고량을 예측해 효율적으로 배송할 수 있는 인프라도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무분별한 마케팅이 아니라, 특정 고객군을 타게팅해 정교하고 효율적인 마케팅이 가능해졌다는 게 여 팀장의 설명이다.

또한 국제 가스 가격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도 AI를 통해 밝혀냈다. 이를 통해 SK가스가 팔려는 물건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판별해냈고, 언제 어떻게 기업의 물건을 팔면 좋을지 미리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이밖에도 SK가스의 투자회사인 SK어드밴스드와는 석유화학(PDH) 공장에서 프로필렌의 수율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공장을 과학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수행 중이다.

대부분 기업들의 국내 DT 도입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데, SK가스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DT사례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여 팀장은 실무진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 관점이 아니라 업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의 어려움(Agony)을 우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 팀장은 대부분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려는 기업들의 데이터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통계적인 기술, 최신 알고리즘의 활용, 정확도 등을 매우 강조하지만 기술 그 자체는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비즈니스 효과(Impact)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는 "난데 없이 누군가가 다가와서 인공신경망이나 딥러닝을 가지고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갑자기 데이터 과학을 들이밀고 미래를 설득하는 것은 어느 산업과 기업을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여 팀장은 "필드에 있는 실무자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을 해소해줘야 데이터 과학을 포함한 디지털 전환도 가능해진다"며 "산업에 대한 이해는 필드에 수십년간 있었던 사람들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예를 들어 현업에서 '엑셀 작업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면 원인을 파악해 '시스템을 통해 데이터 가공자가 아닌 데이터 사용자가 되도록 하겠다'며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그렇게 하나 둘 현업의 업무를 개선하고 상호간 신뢰를 쌓아야 현업의 업무 파악이 가능하고 현업에게 꼭 필요한 예측 모델 개발 등 AI 적용 단계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의 길, 어려움이자 자부심

여 팀장은 DT를 추진함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국내외에 참조할 사례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전세계에서 특히 우리와 비슷한 에너지·화학 업종에서는 디지털 혁신이나 인공지능을 적용한 성공 사례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며 "이쪽 산업은 전세계가 똑같이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혁신에 있어서 모두 초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 팀장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은 국내 최초가 아니라 어쩌면 세계 최초다"며 "이것이 우리의 어려움이자 반대로 자부심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초 호주에서 열린 가트너 컨퍼런스에서 전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기업들의 DT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고 위안이 되었다"며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동종 산업 기업들도 디지털 혁신에 있어서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느라 모두 고군분투 중이다"고 진단했다.

경영진 드라이브 없이는 불가능

선도적인 DT사례를 보이고 있는 SK가스에는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이 있다. 바로 데이터 과학 기반 DT에 대한 경영진의 확고한 신뢰다. 통상 업계에서는 DT가 잘 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데이터 과학에 대한 경영진의 신뢰 부족을 꼽곤 한다. 하지만 여 팀장은 "SK가스 및 SK디스커버리 산하 경영진은 데이터과학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지주사 차원에서 랩이 신설된 것도 이러한 믿음 하에 DT를 가속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여 팀장은 "SK 가스의 경우는 윤병석 대표가 항상 '4i'를 강조하고 있다. '4i'는 데이터의 정보화(Information), 인사이트 발굴 (Insight), 업무의 인텔리젠스화 (Intelligence), 끝으로 앞의 3i를 활용한 비즈니스 효과(Impact)다"며 "이같은 의지는 SK가스가 에너지·화학 산업에서 DT를 활용한 우수 사례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SK가스를 비롯한 SK디스커버리 산하 계열사들은 DT를 고려 대상이 아닌 반드시 수행해야 할 필수 과제로 정의하고 있다"며 "새로운 시대에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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