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평 받은 독립영화들을 살펴보면 유독 청소년 비행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들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시기에 일어나는 학교 폭력과 정체성 혼란, 소통 부재로 인한 오해와 갈등, 더 나아가 술과 담배 등으로 점철된 불편한 세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1)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수상은 물론 그해 국내 신인감독상을 휩쓸었고,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도 초청되며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친구가 세상의 전부일 시기에 벌어지는 갈등의 파국을 담아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팬들 사이에서 잘 만든 영화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연소 칸 입성 감독으로 주목 받은 김태용 감독도 성장통보다 인생의 고통을 먼저 배운 열일곱 소년 영재의 이야기를 담은 '거인'(2014)으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영평상 신인감독상 등 국내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다. 학교와 사회, 가정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절망을 먹고 자란 소년 영재를 통해 외면 받아 갈 곳 없는 청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해 관객들에게 청소년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를 상기시켰다.
이송희일 감독은 입시경쟁, 자살, 폭력으로 뒤엉켜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 소년들의 이야기를 '야간비행'(2014)으로 탄생시켰다. '야간비행'은 한국 학교에서 어떻게 우정이 무너지고 서로를 배신하고, 성 소수자들은 어떻게 배척되는지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또 우등생과 낙오자를 철저히 이분화해 학교 시스템을 사회로 확장시키며 학벌에만 급급한 기성세대를 꼬집었다.
이환 감독의 '박화영'(2018)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보다 조금 더 거침없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박화영이, 다시는 버림받고 싶지 않아 친구들의 '엄마' 역할을 하며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줄거리다. 이환 감독은 어른들이 책임지지 못한 걸 박화영에게 책임지게끔 몰아가는 모습을 담아 역설적으로 어른들에게 묻고 싶어 '박화영'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박화영은 친구들이 귀찮아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니들 나 없었으면 어쩔 뻔 그랬냐"라는 말을 반복한다. 버림 받은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목을 메며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떠날 수가 없는 마음을 대변한 말이다. '박화영'은 청소년들의 음주, 흡연, 섹스, 급기야 살인 등을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펼쳐냈다.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할 벼랑 끝에 있는 청소년의 문제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개봉을 앞둔 '세트 플레이'도 버림 받은 청소년의 불안한 마음을 부서지는 잿빛처럼 표현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형으로 인해 엄마의 관심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성철이, 성매매를 하고, 성매매를 한 여성의 사진을 찍어 협박을 하는 등, 뉴스에서 다뤄지는 미성년자 범죄 문제와 결부시켜, 돌봄을 받지 못한 청소년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청소년 문제를 스크린에 담은 감독들은 비행 청소년의 모습을 다뤄 사회에 일침을 전하는 동시에 희망과 무책임한 어른을 고발하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 그렇다면 실제로 청소년들을 관리하는 관계자들은 독립영화가 인식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홍정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센터장은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바라봤다.
홍정희 센터장은 "비행청소년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기성세대의 관점이 대부분이다.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또한 청소년 문제를 다룬 독립영화를 교육자료로도 활용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홍 센터장은 "개인적으로 영화가 청소년의 모습 전반을 스크린에 담지 못하고 있고 전후 상황을 맥락 없이 청소년의 비행을 논하고 있어 개선 자료로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일반화하고 보편화 하는 요즘 세상에서 청소년 비행은 청소년 삶의 한 부분에서 다뤄져야 한다. 청소년 문제를 지적하는 독립영화들이, 청소년이 왜 그런 모습으로 방황을 하게 됐는지, 그렇게 되기까지 사회와 가정은 무엇을 해왔는지를 함께 다뤄야 교훈적인 영화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소년 상담가는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는 실제인지 착각할 정도로 탄탄한 취재가 뒷받침 돼 있는 것 같다. '박화영' 같은 경우는 상담했던 친구들의 성향들이 고르게 잘 표현돼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교육 자료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실성을 담아 만들었지만, 그 이후의 메시지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를 교육 자료로 활용한다"고 전했다.
데일리안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