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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소장 학자로 인근에 이름을 얻고 계셨지만 그때까지도 군자는 덧글 0 | 조회 717 | 2019-10-05 17:37:41
서동연  
이미 소장 학자로 인근에 이름을 얻고 계셨지만 그때까지도 군자는 과업을 단념하지 않으셨다. 친상을당해 여러 해를 여막에서 성경을 다하시느라 불혹을넘기기는 해도 등과는 일찍 돌아가신 두 분 형님의한을 풀어드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염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삼전보 비보가 이르자 군자께서는과업을 폐하시고 세상과 등지기 시작하셨다.설 때 한쪽 발에만 의지하지 아니하며안세징이 들고 나온 구절은 당시 장희빈에게 빠져있던 숙종으로부터 호의를 끌어내기 위한 현일의 고심 끝에 덧붙인 것들이었다. 폐출의 불가함을 따져숙종의 노여움을 사기보다는 일부 인현왕후의 책임을인정함으로서 군왕의 관대함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깔려있었고, 또 당시에는 모두 그렇게 이해했다. 그런데 안세징은 거두절미하고 그 두구절만 들어 현일을 의리죄인으로 몰아버렸다.뒷날 고려가 망하자 공은 호를 모은으로 삼고 사는곳을 고려동, 붙이는 밭을 고려전이라 이름하며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인근 두심동에숨어살며 만은을 호로 삼던 전 판도판서 홍재, 전 공조전서 조열과 더불어 그 자미수 아래에서 술잔을 나누며나라 잃은 선비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셨다. 그때 남기신 시 중에 이런 게 있다.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우청니란 분이 재령을녹읍으로 받고 재령군에 봉해지면서 경주 이씨에서분관 한 그 자손들은 대대로 재령에 자리잡고살았다.고희에 이르러서야 고향으로 돌아온 현일은 안동금양에 자리를 잡고 저술과 강학으로 남은 삶을 보냈다. 존주록을 쓰고 퇴계선생언행통록의 편목과서애연보를 산정한 것은 그 무렵이 된다. 또 흔히 갈암학파로 알려진 그의 문도들은 달리 금양학파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학파의 형성이 금양시절의 제자들을 바탕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가 하면 부정한 땔감으로 재물을 마련했다가조상의 노여움을 사 화를 입은 얘기도 있다. 뒷간을뜯은 나무로 제삿밥을 짓고 탕을 끓여 올리자 그걸안 조상의 영혼이 호롱불을 뒤집어 집고 재산을 모조리 태우고 아이까지 데이게 했다는 얘기가 그 한 예이다. 땔감조차
하늘의 뜻이 포악한자를 싫어하여 왕사를 일으킨다면 병기를 잡고 앞장서는 일은 내가 맡을 것이니계책을 세우고 시행하는 일은 선생의 말씀을 따르겠소그런 충민공이 오랑캐와 한번 싸움다운 싸움조차 벌여 못하고 허망하게 돌아가시니 군자의 낙담이 오죽하셨으랴. 그때 군자께서 눈물을 흘리시며탄식하신 구결에 이런 게 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시절이 그렇다면 거기에 맞는 할머니의 마음가짐이 있을 것이다.그런데 요즘 할머니들은 자신들에게 큰 어머니으로서의 중요한 몫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다. 대신 마땅히 해야할 바를 게을리하는데서 생긴 여가만 못 견뎌하며 온갖 뜻없고 어리석은 일에 멈과 마음을 탕진한다.공이 진중으로 찾아가자 남 유격이 마주 나와 손을잡고 사과했다.미수 허목은 원래 고향이 경기도 연천이었으나 중년이후 여러 차례 영남에 옮겨 살면서 친분과 기반을확대해온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한강(정구)과여헌(장현광) 문하를 출입하면서 학맥으로도 영남과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현일을 조정에 천거할 때까지도명성만 들었을 뿐 서로 만난 적은 없었다.학문이 무르익고 나이가 차자 원그느이 제자들이모여든어 문하를 이루었다. 이 아이는 특히 예학에밝아 의문이나 제도의 급급함을 물리치고 고의를 지키면서도 시의에 맞는 새로운 예론을 세워 칭송을 들었다. 또 관방과 군무에도 남다른 식견을 가져 임진병자 양란 때 탄금대와 남한산성에서 패한 까닭을 명쾌하게 지적하기도 하였다.여섯째 융일의 자는 자약이요 호는 평재 혹은 인곡이다. 기도가 남다르고 문장또한 뛰어났다. 나이 일곱에 시문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자라서도 문장으로 군자의 기대와 사람을 받았다. 참판을 지낸남곡 권해는 이 아이의 글을 보고 걸출한 안재라 칭송하였다.대나무 숲 깊은 곳에는 복숭아꽃도 피었다네나를 가르치는 아버님의 목소리도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경전을 가르치다가도 자구 해석을 넘어 심오한 논변으로 들어가게 되면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우러나는 한숨과 함께 탄식하기 일쑤였다.당연히 쌍방적이어야 할 정조 의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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