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메네나 코틴/로사나 파리아/유 아가다/고래이야기/2만원
색깔(色·color)은 사물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밝고 어두움이나 빨강, 파랑, 노랑 따위의 물리적 현상이다. 이러한 물리적인 현상은 눈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다. 즉 사물을 볼 수 있어야 색깔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색깔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이런 생각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책은 온통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회색으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책에서는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다. 아니 ‘느낄’ 수 있다. ‘손끝’을 통해서다.
책의 이야기는 ‘토마스’란 소년이 독자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토마스는 노란색, 빨간색, 갈색, 파란색, 회색, 무지개색, 초록색, 검은색 등 색깔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해준다.
예컨대 노란색은 ‘코를 톡 쏘는 겨자 맛이고 병아리 솜털처럼 보들보들한 느낌’이라고 한다. 빨간색은 ‘딸기처럼 새콤하고 수박처럼 달콤’한 색이면서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날 때처럼 아픈 느낌’의 색이라고 설명한다. 파란색은 ‘머리가 따끈따끈해질 만큼 햇볕이 쨍쨍한 날의 하늘 색깔’이고, 하얀색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솜사탕 같은 구름 색깔’이다.
토마스는 눈으로 색깔을 보지 않는다. 맛과 촉감으로 색깔을 느낀다. 그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인데, 오히려 보이지 않아 비시각장애인보다 색깔을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검은색을 어두운색, 무서운 색이라고 말한다. 또 검은색을 표현할 때 우울 악마 나쁨 등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토마스에게 검은색은 다르다. 색깔 중에 왕은 검은색이다. 토마스는 검은색을 ‘엄마가 나를 꼭 안아줄 때 내 뺨을 간질이는 엄마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색깔’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검은색에서 엄마 따스함 간질거림 등을 느낀다.
저자가 시각장애인을 화자로 내세우면서 색깔을 설명한 이유가 뭘까. 그는 “시각장애인들은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을 통해 색깔을 느끼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며 “비시각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들의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는 비주얼(시각)의 홍수 속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현실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고 너무 시각적인 것에 치중하는 현재를 지적했다. 그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감각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오감을 이용해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감 활용을 강조한 저자는 책에 그림, 글 등 시각적인 요소만 채우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처럼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인 ‘점자’를 책에 담았다.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이 손가락으로 더듬어 글을 읽을 수 있게 한 글자다. 지면에 볼록 튀어나오게 점을 찍어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해 점자라 불린다.
책은 토마스가 소개하는 색깔을 한글로 적어놓은 동시에 점자로 같은 쪽 상단에 표시해놨다. 책 말미에 표기법도 적어놔 점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점자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또 토마스가 느끼는 색깔을 평면 그림이 아니라 부조(평면에 형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부분 조형기법)로 표현했다. 예컨대 검은색은 ‘엄마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모양 부조로 책에 담겼다. 회색은 ‘비를 뿌리는 하늘’ 부조로 설명했다. 이러한 부조는 검은색 일색의 바탕 위에 투명하게 표현됐다. 독자가 눈보다 손끝에 집중하길 바라서다.
“검은색 배경 위에 펼쳐져 있는 부조 형태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텍스트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어우러져 있는 책이에요. 일러스트레이션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기존 책 읽기와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책 읽기를 경험해 보세요.”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