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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로그' 일상 속에 보석 같은 충만함이 덧글 0 | 조회 79 | 2020-12-04 15:56:45
비룡짱  

유튜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는 브이로그(vlog)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촬영해 만든 영상 콘텐츠를 뜻한다. 과거 자신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블로그에 담아냈다면 요즘은 한 편의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일상의 콘텐츠화’이므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장르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브이로그 채널은 매주의 유튜브 인기 영상 탭에 꼭 하나씩 오를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인기 탭에 올라오는 브이로그 영상들을 살펴보면 계절이나 사회 상황과 관련 있는 경우가 많다. ‘일상’이 콘텐츠라면 계절이나 사회 상황은 그 콘텐츠의 배경이므로 당연히 연동될 수밖에 없다. 시청자 역시 계절에 맞는 콘텐츠를 찾기 마련이다. 여름이면 캠핑 영상들이 주로 인기 탭에 올라온다. 김장철인 최근엔 유독 김치 담그는 내용의 영상이 많이 게재된다.

사람들은 왜 브이로그를 볼까 바꿔 말하면 ‘왜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일상을 시청하고 싶어 하는가 ’ 11월 셋째 주의 유튜브 인기 탭에 올라온 콘텐츠 중 유독 눈에 띄는 영상이 있었다. ‘고기남자 MeatMan’라는 채널이다. ‘평생 써먹는 수육 먹는 법’이라는 제목과 김치 및 수육 사진으로 섬네일을 만들었다. ‘인기 급상승’ 2위에 랭크되어 있었는데, 평범한 요리 영상인 줄 알고 눌렀다가 넋을 놓고 봤다.

‘고기남자’는 영상 전반부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육을 요리해 먹다가 중반쯤에 이르면 갑자기 시청자들에게 ‘진짜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준다며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간다. 그가 차를 몰고 달려간 장소는 가족 곁이었다.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담그고, 그는 그런 가족에게 영상 전반부에서 보여준 요리들을 대접한다. 그가 말한 ‘진짜 맛있게 먹는 법’은 특별한 요리법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콘텐츠는 평범한 요리 영상을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브이로그가 된다. 바쁜 생활 때문에 가족이 모여서 제대로 밥 한 끼 먹은 지 1년이 넘었다는 사람부터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나가지 못해 부모님 본 지가 오래되었다는 군인의 댓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요리 장면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브이로그 파트를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과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인기 있는 브이로그는 그 콘텐츠를 만드는 이의 일상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바로 보편적인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대개 브이로그가 보여주는 일상이란 사실 ‘비일상’이다. 이제 온 가족이 모여서 화목하게 김장을 담그고 수육을 삶아 나눠 먹는 일상보다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혼밥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오히려 현대인들의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 ‘고기남자’ 영상에 대한 수많은 반응은 예전에는 흔했을 보편적 일상이 이제 각자의 생활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비상한 일’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브이로그 유튜버인 ‘오느른(Onulun)’ 채널 역시 마찬가지다. 채널 정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4500만원짜리 폐가를 덜컥 사버린 방송국 PD. (중략) 세컨드하우스의 꿈, 대리 실현해드립니다!” 말 그대로다. 30대 초반의 여성 PD가 시골 폐가를 매입해 고쳐 사는 일상 영상이 올라온다. ‘오느른’ 채널 운영자인 최 PD는 이 채널을 운영하면서 서울 전셋집도 빼야 했다고 한다. 폐가를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이 꽤 컸기 때문이다.

최 PD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고, 오래된 다세대주택을 매입할까 고민했는데 어른들이 반대했다’는 경험을 털어놓았다. 어른들이 반대한 까닭은 ‘왜 아파트를 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서울 수도권에 사는 보편적인 현대인들이 당면한 일상은 그녀가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이 아니라 바로 그 인터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하는 것조차 ‘비상한 일’에 가깝다. 꼭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느른’ 채널의 브이로그 영상을 보고 ‘힐링된다’는 반응이다. 팍팍한 도시에서 삶의 하중을 견뎌내야 하는 생활인들은 고즈넉한 귀촌 생활이라는 ‘비일상’에서 힐링을 받는다. 전세 계약이 끝나 2년마다 이사해야 하는 사람들은 시골 폐가일지언정 자기 집을 수리하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제 집을 수리하는 일상을 아름답게 담아낸 브이로그 영상에 대한 반응은 역설적으로 그렇게 살 수 없는 20~30대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보통 본인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타인의 경험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과거에는 그 매개가 문화 창작물이었다.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을 통해 타인의 삶을 공유했다. 그런데 이제는 창작물이 아닌 타인의 실제 일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었다. 브이로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지금은 ‘비일상’이지만 한때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 지금은 상실되어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무엇이 일상이고 무엇이 비일상일까

그러나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는 〈아기공룡 둘리〉나 〈응답하라 1988〉에 묘사된 삶을 지금의 우리와 비교하며 상실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우리’가 꼭 충만함을 느낀 것은 아니다. 만약 드라마에 나오는 ‘그때의 청년’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와 ‘오늘날 청년’의 삶을 엿본다면, 무지막지한 풍요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할지도 모른다.

훗날의 인류는 21세기 인류를 연구할 때 이전 시대보다 폭증한 영상자료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사소한 것인지를 가려내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자료가 폭증하면 모든 것을 수월하게 파악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특별한 이벤트는 자세히 적어두는데 일상적인 것들은 소략하게 적어놓아서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영상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지금의 풍경이 묘사되지만 뭐가 ‘일상’이고 뭐가 ‘비일상’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령 캠핑이 21세기의 사람들에게 일상이었는지, 특정 계층만 즐기는 특권이었는지 헷갈릴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다지 즐기지 않고 흘려보내는 수많은 일상 속에도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에게는 보석 같은 순간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고기남자’가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순간, ‘오느른’이 시골 폐가를 구입한 순간처럼 말이다. 넘쳐나는 브이로그와 흥행 콘텐츠 속에서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꼭 그런 콘텐츠를 잡아내어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지 않더라도 ‘행복’의 관점에서는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브이로그에서 타인의 삶을 즐기며 다만 박탈감을 느낄 뿐 아니라 그런 종류의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면, 하루하루의 빛깔도 달라질 것이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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